혼인관계 중 배우자 한쪽에게 책임 있는 의무 위반 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그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인정하지 않는 것을 유책주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경우에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요, 오늘은 그 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 민법상 재판상 이혼사유와 대법원의 입장
민법은 제840조에서 재판상 이혼원인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으면 부부의 일방은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위 규정에서 1호부터 5호까지는 유책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마지막 사유가 유책주의에 근거한 것인지 파탄주의에 근거한 것인지 논란이 없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의 입장 : 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그런데 2015년 대법원은 '민법 제840조 제6호 이혼사유에 관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는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2.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언제나 인정되지 않는 것일까
이와 같이, 우리 민법 규정과 대법원의 원칙적인 입장은 유책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경우에 일률적으로 이 원칙을 고수하기란 어려울 겁니다. 이미 실질적으로 파탄이 난 결혼생활을 유지하라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대법원 판례에서도 이런 점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고 보이는 판결 내용이 있습니다.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따른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요약하면,
- 상대방에게도 이혼의사가 있는 때
- 유책배우자가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있는 때
- 유책배우자의 책임이 약화되어 경중을 따지기가 무의미해질 때
와 같습니다. 물론 실제 사건에서 이러한 점들에 대한 유형화와 사례의 집적이 필요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소송이 언제나 기각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3. 유책배우자가 이혼청구하여 기각된 후 다시 이혼 소송하여 이혼한 사례
[사실관계]
- 부부는 2010년 혼인신고 후 딸 출산
- 결혼생활 갈등으로 2016년 남편은 집을 나가 이혼소송 제기하였으나 유책배우자로 인정되어 기각(판결 확정)
- 판결 확정 후에도 부부는 별거
- 남편은 딸의 양육비와 아내가 거주하던 아파트 담보대출금 납부하고 있었음
- 아내는 남편이 딸을 만나기 위해 자신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잠금장치를 일방적으로 변경하기도 함
- 남편은 2019년 다시 이혼소송 제기(1, 2심은 원고 패소 판결)
[대법원 입장]
재판부는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 의사를 인정하려면 혼인생활의 전 과정과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중 드러난 상대방 배우자의 언행 및 태도를 종합해 원만한 공동생활을 위해 노력해 혼인유지에 협조할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한쪽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가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패소가 확정됐더라도, 이후 상대방도 유책성을 계속 비난하며 전면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거나, 민·형사소송 등 혼인관계 회복과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이 남아있는데도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장기간의 별거가 고착화된 경우,
이미 혼인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어 상대방을 설득해 협의에 의해 이혼하는 방법도 불가능해진 상태까지 이르렀다면 종전 이혼소송 시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이 상당히 희석됐다고 볼 수 있고, 이는 현재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 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22. 6. 16. 선고 2021므14258 판결 이혼 등)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모든 부부생활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례에서는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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